모든 길을 알지 못해도 괜찮다
Date 2017-04-01 19:01:50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2,261
김유식
교수
한국과학기술원 생명화학공학과
ysyoosik@kaist.ac.kr

학사과정 학생들과 면담을 하면 가장 흔한 상담은 역시 진로에 관한 고민이다. 생명화학공학이라는 학문의 특성 때문인지, 앞으로 어느 분야를 공부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학생들이 많다. 나는 항상 학생들에게 최대한 다양한 분야를 직접 경험해보고 결정하라고 얘기하지만, 솔직히 나는 학교 다닐 때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Dartmouth 대학에 입학하여 1년 동안 기초과목을 수강하면서, 화학, 수학, 물리에 관심이 생겨 화학공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화학공학 중에도 특히 공정 디자인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이 분야로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정한 후, 나는 이 분야만 파고들었다. 내가 Dartmouth에 학부생으로 있을 당시만 하더라도 화학공학과를 전공하기 위해선 생물수업을 수강할 필요가 없었다. 사실 기초생물과 분자세포생물학 과목은 화학공학 전공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strongly recommended한 과목이었지만, 나는 오로지 공정에만 관심이 있었다. 실제로 학부과정 4년 동안 생물수업은 단 한 과목도 수강하지 않았고, 마지막 생물수업을 들은 게 우리나라 중학교 3학년 과정인 9학년 때이다. (참고로 나는 7학년 때부터 미국에서 공부하였다.) 하지만 현재 나는 BT News지의 젊은 BT인 란에 원고를 쓰고 있는 생물분야를 연구하는 생명화학공학과 교수이다.


연구실 선택 계기


Princeton 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석박사 통합과정으로 진학할 때 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내 자신이 공정 디자인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Princeton 화학공학과는 학교에서 첫 1년 동안 모든 학생에서 장학금을 주고, 학위과정 지도교수는 한 학기 이후에 정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첫 학기 동안, 학과의 교수님들이 돌아가며 본인의 연구주제와 본인의 연구실에 들어오게 되면 맡게 될 프로젝트에 관한 내용을 발표 해주신다. 신입생의 경우 첫 학기에는 지도교수가 없음으로, 대학원과정 필수과목을 다 같이 듣게 된다. 이 중 하나인 Chemical Reactor Engineering에서  지도 교수님이신 Stanislav Shvartsman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Shvartsman 교수님의 연구실은 초파리 배아를 실험 시스템으로 사용하여 세포신호조절 체계중 하나인 Mitogen-activated protein kinase(MAPK) 네트워크를 모델링하고 그 결과를 실험으로 검증하는 연구를 한다. 화학공학과에서 이런 기초생물발달에 관한 연구는 사실 많이 낯설었고, 처음에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한 연구 주제였지만, Shvartsman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점점 교수님에게 끌리게 되었다. 연구주제보다 도 그냥 막연히 Shvartsman 교수님 지도하에 공부를 하면 많은 것을 배우면서 즐겁게 대학원생활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교수님을 찾아가 상담을 하면서,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박사연구를 하고 싶지만, 나는 아직 DNA/RNA의 차이점도 잘 모른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교수님께서는 본인도 처음에 이 분야의 연구를 시작할 때는 전사(transcription)과 번역(translation)이 어떻게 다른지 잘 몰랐다고 말씀하시며, 대학원연구를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흔쾌히 나를 본인의 연구실로 맞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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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Princeton 대학교 Carl Icahn Laboratory

 

생물이라는 새로운 도전


뻔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성공적인 대학원과정을 위해 필요한 요소는 흥미로운 연구주제와 연구실내에서의 인간관계라고 생각한다. Shvartsman 연구실 동료들은 대부분 교수님에 대한 존경과 지도를 위해 실험실에 조인하였다. 덕분에 연구실이 비슷한 연구 목표의식을 가지는 학생들로 이루어지게 되었고, 교수님을 중심으로 연구실 전체가 뭉칠 수 있었다. 실제로 학과 내에서도 분위기가 좋은 연구실 중에 하나로 인식되고 있었다.
생물 신호전달 네트워크 모델링은 아마 모든 화학공학도에게 생소한 주제일 것이다. 하지만 이 분야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연구에 대해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대학원생이 생물과학과 학부생들과 같이 수업을 듣고, 모르는 부분을 학부생들에게 배우면서 연구를 했지만, 같이 목표를 향해 일하는 실험실 동료들이 큰 힘이 되었다.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단순히 좋은 성적을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얻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선택한 Shvartsman 교수님 연구실에서의 대학원 생활은 나에게는 최고의 선택 중에 하나였다.
실험을 디자인하는 방법, 연구주제를 발굴하는 방법,논문을 작성하는 방법 등 독립적인 연구과학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소양들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Shvartsman 교수님께서는 논문 작성, 연구 발표, 그리고 연구제안서 작성을 집중적으로 가르쳐 주셨다. 논문 작성에 경우 Shvartsman 연구실 학생들은 첫 주저자 논문을 쓸 때, 초안을 완성한 후, 교수님 오피스에서 교수님과 둘이서 논문 참작을 같이 한다. 거의 모든 것은 교수님께서 고치시고 그걸 옆에서 지켜보고 의견을 얘기하는 정도지만, 논문 하나를 고치는데 거의 하루 종일 걸리므로, 교수님의 글 참작을 바로 옆에서 계속 지켜보며 배울 수 있었다. 꼭, 단기속성 글쓰기 과외 같은 느낌이었다. 연구 발표 또한 교수님이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시어, 발표 슬라이드 하나하나를 같이 챙겨주시면서 가르쳐주시고, 연구과제 제안서에 경우 교수님이 쓰신 내용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어 제안서 쓰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이러한 경험 덕분에 아무리 새로운 분야를 도전해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뭐든지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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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Shvartsman 교수님 연구실 동료들


한국에서 포스닥연구하기


박사학위를 받고나니 미국생활 16년째를 맞이하게 되었다. 학위 후 진로에 대해 고민하다가 한국에서의 교수생활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국에서의 연구경험을 쌓기 위해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빛내리 교수님 연구실에 포스닥연구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포스닥 연구실은 학위 과정 중에 내가 가장 부족했던 부분을 채울 수 있는 곳으로 알아보았다. 초파리 연구를 하면서 생물에 대한 흥미가 있었지만, 아직 내가 생물분야를 연구한다고 주장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배경지식과 연구경험 때문에, 생명과학부에 소속된 연구실로 포스닥을 가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학위과정 중 RNA 발현 패턴과 RNA 이미징에 관심이 생겨 RNA 분야를 연구하시는 김빛내리 교수님 연구실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김빛내리 교수님은 인간세포에서 microRNA를 연구하시어, 초파리 배아발달을 연구한 나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교수님 또한 포스닥연구원이 아니라 박사학위를 시작하는 학생의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새로운 분야 개척에 대해선 학위 과정 때의 경험도 있어서, 할 수 있다는 믿음하나로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언어와 문화차이로 외국에서의 연구생활이 어렵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 언어의 문제도, 문화의 차이도 없었지만, 서울대에서의 포스닥 생활은 학위 과정보다 훨씬 힘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한국사회의 특징인 서열에서 오는 압박감과 아직 부족한 내 자신이었다. 나는 포스닥연구원이었지만, microRNA에 관한 지식은 이제 막 학위과정을 시작하는 대학원생들과 비슷하거나 그들보다도 못 하였다. 그래서 그들처럼 다른 고학년 학생들과포스닥연구원분들께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나는 항상 “박사님”이었고, 나에게 실험을 가르칠 의향이 있는 학생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물론, 이런 문제들은 microRNA에 대한 지식과 실험 경험을 쌓고 새로운 동료들과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생명과학부에서 4년간의 포스닥 생활을 통해 기초과학 지식을 쌓을 수 있었고, 이를 내가 대학교와 대학원 학위과정때 배운 화학공학에 접근 방법과 접목한 나만의 유니크한 연구 방법을 개척 할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2016년 1월에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에 임용이 되어 대전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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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김빛내리 교수님 연구실 동료들


맺음말
글을 쓰면서 예전 생활을 돌이켜보니, 참 운이 좋았던 거 같다. 지금까지 나는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결과에 대한 생각보다도 내가 원하는 쪽의 길을 선택하였다. 운이 좋게도 가는 길마다 좋은 동료들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았고, 존경하는 지도교수님들 통해 다양한 가르침을 얻었으며, 힘들 때마도 힘이 되어주는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자리를빌어, 미국과 한국에서 큰 가르침을 주신 Shvartsman 교수님과 김빛내리 교수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이제 나를 믿고 선택해준 나의 연구실 학생들에게 그 동안 내가 받은 도움과 가르침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리라 스스로에게 다짐해본다. 이 글을 일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드리며, 예전 실험실 동료들과 지도교수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또한, 내 결정을 지지하고 따라준 아내와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