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에 대한 믿음으로
Date 2022-09-26 17:42:52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271
임재우 박사후 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나노연구센터
zeuyim5052@kribb.re.kr

글을 시작하며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기고의 기회를 주신 한국생물공학회 관계자분들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임은경 박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제 막 박사학위를 받은, 아직은 학생에 더 가까운 사람이지만, 박사후 연구원으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편하게 해보고자 한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나는 2016년 가을부터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학부 인턴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박사학위를 취득할 생각은 없었다. 석사를 취득하면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고 당시에는 취업이 어려운 시기였기 때문에(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장 취업하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심도 있게 공부해 보고자 대학원을 우선 진학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여러 기관과 학교를 알아보던 중 현재의 지도교수님이신 임은경 박사님을 만나 뵙게 되었는데, 굉장히 자신감 넘치시던 교수님의 모습에 반해, 홀린 듯 생명연에 들어오게 되었다. 인턴 시절에는 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남는 공강에 연구원으로 출근하여 실험을 배웠다. 학교에서 연구원까지는 버스를 타고 1시간 걸리는 거리였지만, 크게 힘들지 않고 오히려 즐거웠다.학부 시절부터 분자진단이라는 분야에 관심이 있었다. 특히 유전자 증폭을 통해 극소량의 DNA 또는 RNA 등을 민감도 높게 검출할 수 있는 PCR 기술에 흥미가 있었다.지금은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인해 초등학생까지도 PCR을 알겠지만, 당시만 해도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기술이었다. 학부에서는 주로 qRT-PCR을 가지고 바이러스 검출용 프라이머 개발을 연구하였고, 특히 AIDS(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진단 키트 개발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졸업을 했다. 졸업 주제로 분자진단 연구를 수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진단(diagnosis) 분야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싶었고, 그 당시에는 원대하게도 PCR 기술보다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큰 꿈을 안고 당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위해요소감지BNT연구단(現 바이오나노연구센터)에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참여하게 된 연구단의 목적 중 하나는 새로 출현하게 될 팬더믹에 대응할 수 있는 바이오센서 및 바이오콘텐츠 개발이었다. 새로운 팬더믹의 출현이라는 문구는 아주 먼 이야기로 느껴졌지만, 놀랍게도 2019년 보란 듯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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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임은경 박사님과 연구실 동료들.

 



석-박사 학위과정


석사 학위를 시작하며, 가장 처음 맡게 된 연구는 자성입자를 통한 박테리아의 분리 농축 기술 개발이었다. 의료, 식품, 생물공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박테리아의 오염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보편적인 균주 배양을 통한 박테리아의 검출은 시간이 오래 소모되기 때문에, 세균의 존재 여부를 빠르게 확인할 수 없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고자 자성 나노비드(magnetic nanobeads)에 세포벽을 구성하는 펩티도글리칸(peptidoglycan)과 결합하는 펩티도글리칸 결합 펩타이드(peptidoglycan binding peptide, PGBP) 결합하여 세균을 특이적으로 포집하고 자성을 이용한 농축이 가능한 입자를 개발하였다. 생명과학과를 졸업하였기에 물리화학적 분석과 데이터 해석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다양한 분석 장비의 사용법과 원리를 알아가며 나노라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이후에는 주로 유전자 검출 기술을 통한 질병 진단 기술을 개발하는 데 주력했다. 내가 주로 연구한 기술은 비효소 방식의 신호 증폭 기술이었다. 주로 PCR, RCA, LAMP와 같은 유전자 증폭 기술들은 다양한 효소를 사용하는 반면, DNA 구조체만으로 표적 서열을 검출할 수 있는 방식은 사용의 편의성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고가의 효소와 기타 시약 없이 DNA 프로브들 만으로도 반응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비효소 신호증폭 기술로는 주로 Catalytic hairpin assembly (CHA)와 Fuel-stimulant powered amplification (FSP) 이론을 활용하여 DNA 프로브 세트가 타겟 유전자를 검출하여 형광신호를 발산하도록 유도하고 추가적인 연쇄반응을 통해 결합된 타겟을 이격시켜 재순환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쉽게 설명하자면, 하나의 타겟 유전자가 리포터 프로브와 결합하여 신호를 만든 후 기존의 프로브와 떨어져 나와 다른 리포터에 다시 결합하는 방식으로 신호를 증폭하는 방식이다. 재미있는 점은 PCR을 위한 프라이머의 경우, 최근 소프트웨어가 잘 발달하여 자동으로 서열을 찾아주는 반면, 프로브의 경우 증폭 이론에 맞춰 직접 DNA 서열을 설계해야 하는데, 같은 서열일지라도 ATGC 어떤 염기를 넣는지에 따라 감도가 적게는 수에서 많게는 수백 배까지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처음 프로브를 디자인 할 때는 서열을 하나하나 바꿔가며 실험하여 최적의 조건을 찾았지만, 노하우가 생긴 후에는 DNA의 2차 구조 분석과 열역학적 에너지 계산을 통해 적합한 프로브의 설계가 가능해졌다. 물론 노하우가 생기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렇게 제작된 프로브는 다양한 소재에 고정화시켜 바이오센서로 활용해보고자 하였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위암, 유방암, 알츠하이머와 같은 외인성 감염병 또는 중대 질병의 간편 검사 기술들을 발표했고, 이러한 성과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전광역시장상과 연구기관장상을 표창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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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나노연구센터

 


학위를 마치며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나노연구센터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기존의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연구원에서는 주로 바이오센서를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며, 최근 코로나를 비롯한 다종의 바이러스를 동시 검출할 수 있는 기술과 장비를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여전히 이 일이 즐겁고 연구자의 길을 이어가고 싶은 이유는, 내가 하는 연구들이 정말 가치 있고 필요한 기술들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아직은 배울 것이 더 많고 앞으로도 해야 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스스로의 앞날이 더욱 기대된다. 박사후 연구원 과정으로 조금 더 성장한 연구자가 되는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글을 마치며


원고를 작성하며, 나라는 부족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은 조심스러웠다.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원고를 쓰기 시작했지만, 글을 써가며 내가 걸어온 길을 다시 돌이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글을 기고할 수 있게 제안해 주신 임은경 박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또한 이 기회를 빌려 많은 가르침과 도움을 주신 지도교수님과 함께 고생하는 동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