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을 위한 연구
Date 2022-04-09 19:01:30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80
이상아
박사후 연구원
KIST Europe Forschungsgesellschaft mbH
sang-ah.lee@kist-europe.de

글을 시작하며...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국생물공학회 소식지를 통해 기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성균관대학교 이원화 교수님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본인 소개를 간단히 하면 UST-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환경바이오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전공하고, 현재 독일에 자를란트 주에 위치한 KIST Europe Forschungsgesellschaft mbH 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다.

 

  막상 기고문을 쓰기로 하니, 책상 앞에 앉아서 고민부터 하게 되었다. 주 전공이 아니라면 듣기만 해도 따분할 수 있는 이야기로의 시작은 학회 소식지라기보단 또 하나의 논문처럼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그래서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겠지만 내 초등학교 시절 생애 처음 기대와 실망 그리고 자책과 방어적 합리화라는 네가지 감정 프로세스의 변화를 명확하게 알게 해준 기억을 떠올려보며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그 당시 미끄럼틀 주변에는 이름 모를 풀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날은 평소 관심이 없던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풀잎을 관찰하고 싶었던 것 같다. 풀잎을 이리저리 보다가 풀잎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녹색을 띠는 번데기 하나가 풀잎 뒷면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풀잎 그대로 집에 가지고 왔으면 좋았겠지만, 나뭇가지로 살짝 떼어 어떤 나비의 변태 과정인 줄도 모르는 번데기를 필통에 넣고 집으로 가지고 왔다. “나비가 되면 정말 신나겠다”라는 들뜬 기대감으로 오는 내내 신이 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번데기를 곤충 채집통 투명 플라스틱 입구를 떼어 그 위에 두고 매일 관찰하였다. 며칠이 지났을까, 번데기의 색이 점점 갈색으로 변하였고, 그 당시 배 부분이라고 생각하던 곳이 거뭇거뭇 해지며 나비로의 변태를 지켜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은 절정에 다다랐다. 그렇게 아주 어두운 갈색으로 번데기는 변했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나비는커녕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이때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었던 것 같다. “열어 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서랍에 나뒹구는 조각칼을 꺼내어 번데기의 중간을 갈라보았다. 충격이었다. 속은 마치 텅 빈 파이프 같았고, 투명 색 진득거리는 물질만 칼에 묻어 나왔다. 너무 실망을 해서 그냥 그대로 누웠던 것같다. 한참을 누워있으면서 내가 느꼈던 실망감은 나비가 되지 못한 애벌레에 대하여 미안함(자책)으로 바뀌게 되었고, 그 순간도 잠시 “원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는 것을 가지고 왔을 거야”라는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 대한 방어적 합리화를 했었다.

 

학위과정에서...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느낀 모든 감정변화 과정이 연구 과정과 매우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적어도 개인적인 호기심에 시작한 모든 연구는 연구 결과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아스타잔틴이라는 항산화 물질을 생합성하는 한 미세조류인 헤마토코쿠스 (Haematococcus lacustris)와의 첫 만남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미세조류 (Microalgae)는 광합성을 하는 단세포성 식물로 식물과 미역과 같은 거대조류 (Macroalgae)보단 박테리아와 같이 미생물로 여겨지는 단세포성 진핵생물이다. 따라서 여느 진핵생물과 마찬가지로 에너지를 합성하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가 막을 통해 구분되어 있고, 광합성을 위해 엽록체까지 가지고 있는 작지만 매우 흥미로운 생명체이다. 그리고 엽록소에 의해 식물과 같이 녹색을 띠며, 그 생장 속도가 빨라 항산화 물질, 바이오디젤, 오메가-3와 같은 2차 대사산물에 집중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어 미세조류 연구자들은 마치 하나의 공장과 같다 하여 “세포공장” 이라 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 연구주제를 가지고 몇 년을 연구하게 되면 빠지게 되는 피할 수 없는 매너리즘에 나도 결국 빠지게 되었고, 이를 극복할 새로운 것을 찾고자 하였다. 그러던 중 평소 녹색으로 보이다 주변 환경이 변하면 세포 전체가 붉은색으로 변하는 한 미세조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것이 앞서 언급한 헤마토코쿠스라는 미세조류였다. 지금부터는 진행한 헤마토코쿠스 관련 연구가 초등학생 시절 느꼈던 그 감정변화 과정과 매우 흡사했음을 두 사례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연구는, 헤마토코쿠스의 항산화 물질 생합성 경로인 carotenogenesis pathway에 속한 베타카로틴 (betacarotein), 칸타잔틴 (cantaxanthin), 아스타잔틴 (astaxanthin)을 예쁜꼬마선충 (Caenorhabditis elegans)이라는 모델 생물 lifespan 증가에 활용한 연구였다. 이 연구에 아스타잔틴 말고 carotenogenesis pathway상의 다른 색소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헤마토코쿠스가 가진 생합성 경로에서 전구체 격인 중간 색소들의 비율이 배양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모니터링하면서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물론 최종 보스 격인 아스타잔틴 (실제로 가장 마지막에 생합성되는 product)이 배양이 끝날 시점에서 세포 건조중량 대비 2.88%까지 증가하여 가장 높은 농도를 보여주지만 베타카로틴, 칸타잔틴과 같은 다른 물질도 적은 함량으로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래서 HPLC (high-performance liquid chromatography)를 통해 높은 함량을 보였던 색소들을 시중에서 구매하여 상기 물질에 대한 항산화 능을 예쁜꼬마선충에 적용해보기로 하였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물질 간 큰 차이가 있을 것이란 기대감은 통계적 유의성을 보이지 않게 되면서 실망감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의 감정은 다른 전구체를 구매하여 더 다양하고 체계적인 연구계획을 하지 못했나 라는 자책감으로 바뀌었고 (실제로 학위 당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이 연구는 여러 논문에 게재 거절을 당하면서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었다. 하지만, 분명 대조군보다 처리군에서 lifespan 증가 효과를 보였고 이를 바탕으로 선충이 가지고 있는 superoxide dismutase, catalase와 같은 자체 항산화 단백질 및 이를 코딩하는 유전자의 상대적 발현량을 분석하고 ROS로부터 받는 산화스트레스의 바이오마커인 malondialdehyde의 농도가 현저히 낮아지는 것을 확인하면서 항산화 효과에 대한 내 이론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완벽하지 못 연구계획에 대한 자책 그렇지만 이미 나온 연구 결과에 대한 방어적 합리화 과정을 거치면서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고자 노력했던 것 같다.


  두 번째 연구는 다른 미세조류 또는 박테리아보다 상대적으로 느린 헤마토코쿠스의 성장 속도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였다. 헤마토코쿠스는 높은 아스타잔틴 함량을 자랑하지만 앞서 말한 단점으로 인해 mass-culture를 하기엔 어려운 단점이 있다 (느린 성장은 곧 다른 종으로부터의 오염에 취약성을 나타냄). 여러 뛰어난 연구자분들께서 배양공정 및 무작위 돌연변이 (random mutation)와 같은 연구를 통해 극복하고자 하였고, 요즘 매우 핫한 기술인 유전자가위를 통한 gene editing 기술도 시도 되고 있는 시점에서 무언가 다른 관점이 필요했다. 미생물쟁이로서 나는 좀 다른 접근 방식을 시도하고자 하였고, 미세조류 배양환경에 존재하는 박테리아 군집을 분석하면 무언가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나오지 않을까? 라는 또 감당치 못할 호기심에 집중하였다 (기대). “실행에 옮기자”라는 생각과 동시에 미세조류 세포 주변 미세환경 (micro-environment)안의 미생물 군집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결과, 속 (genus) 수준에서 5종의 박테리아 (상대정량 순으로 Sphingomonas, Microbacterium, Renibacterium, Methylobacterium, Paenarthrobacter)들이 미세조류의 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과 그리고 배양환경 및 배지의 영양염 (특히 질소)에 따라 우점하는 박테리아가 크게 변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metagenome 상에서 분석된 박테리아를 가지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마치 항해 도중 노가 부러져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배처럼 잠시 방향을 잃었었다 (실망과 자책). 그러던 중, 지도교수님께서 배양액 안에서 박테리아들을 분리해보자라는 의견을 주셨고, 샘플 안에서 분리된 박테리아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헤마토코쿠스의 성장과 관련이 깊은 물질을 생합성 하는 두 종이 분리된 것을 확인하였다. 분리한 두 종의 박테리아는 헤마토코쿠스 성장을 2배 가까이 증가시키는 기염을 토하였고, 추가공정 개발 없이 미세조류 식물권 (phycosphere) 내 서식하는 박테리아를 분리하고 접종해 준 것만으로 실제 헤마토코쿠스의 생장 증가라는 고무적인 연구 결과를 확보하였다. 더욱 놀라운 점은 metagenome 결과로부터 얻을 수 있는 host-bacteria interaction을 증명하게 되면서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으로부터 얻은 통계적 데이터들에 대한 신뢰성을 주장할 수 있었다. 이번 연구의 경우 그간 느꼈던 감정변화 과정에서의 마지막 단계인 방어적 합리화와는 조금 달랐지만 매우 흡사하게 연구가 시작되고 마무리된 것을 알 수 있다. 전공 주제와 달라 상기 연구들을 통해 출판한 논문들이 학위논문에 실리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도전했던 연구들이고 어려웠지만 잘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연구들을 수행하는 데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셨던 안치용 지도교수님과 항상 날카로운 조언을 해주신 오희목 박사님께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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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UST-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미세조류를 연구하던 학위 시절.


박사후 연구원 과정에서는?

한창 팬데믹으로 고통이 절정에 다다랐을 무렵 졸업을 했고, 노력 끝에 독일 KIST Europe Forschungsgesellschaft mbH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서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KIST Europe은 잔류성 오염물질 (Persistent organic pollutants, POPs), 소독부산물 (disinfection by-products, DBPs), 비스페놀류 (bisphenols)등과 같은 환경 독성 물질이 모델 생물체 안에서 일으키는 부작용 기전 (adverse outcome pathway, AOP)을 OECD와 함께 표준화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나는 수처리 과정에서 병원성 박테리아 및 바이러스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하는 소독제 (disinfectants)로부터 유도되는 소독부산물 (DBPs)에 대한 부작용 기전을 제브라피쉬 (Danio rerio) 에스트로겐 수용체에서 규명하는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연구가 마무리되고 낯선 환경과 연구 장비에 대해 적응을 할 때쯤 다시금 어린 시절 느꼈던 호기심이라는 감정이 슬슬 나오기 시작하였고, PI 박사님의 조언과 지원 아래 미세플라스틱의 만성섭식으로 인한 물벼룩 장내 미생물 군집 변화를 내분비 교란 장애와 연결하여 해석하는 연구를 현재 진행 중이다. 짧은 연구 인생이지만 연구자의 길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고, 내가 내린 결론은 아래와 같다.

  “작은 호기심이 증폭되어 물증은 없지만 심증만 있는 비합리적인 의심으로부터 그 물증을 찾아가는 과정”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느껴온 연구다. 아직 너무도 부족하고 목마른 한 명의 연구자이지만 환경과 미생물이라는 매력적인 주제로 계속 병들어 가는 지구와 이에 존속을 위협받는 인류를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연구 수행을 다짐하며 본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연구를 위해 아낌없이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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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독일에서의 생활을 담은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