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공학과 생명공학의 융합을 꿈꾸며
Date 2022-04-09 18:53:47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66
김나영
박사후 연구원
Imperial College London Department of Materials, Department of Bioengineering and Institute of Biomedical Engineering
nayoung.kim15@imperial.ac.uk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국생물학회 소식지의 젊은 BT인란에 기고의 기회를 주신 관계자 분들과 인천대학교 김은정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아직 BT인으로 불리기엔 너무나 부족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BT분야 연구인으로서 지나온 길을 공유하고, 그 시간을 함께 나눈 모든 분들께 이 글을 빌려 감사하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BT인으로서의 길을 걷고 있지만, 나는 학부, 석사, 박사를 모두 생명공학이 아닌 재료공학을 전공하였고, 지금도 어느 곳에서든 재료공학자로서 나를 가장 먼저 소개하곤 한다. 나의 학부 시절을 보낸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Department of Materials Science and Engineering) 는 행정적으로 공과대학 소속의 학부이지만, 공과대학 중 유일하게 학부 (학과) 이름에 ‘과학’ (Science)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재료공학이 공학적 성격과 더불어 과학으로서의 성격 또한 짙게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학부 공부를 하는 동안 이런 재료공학의 특별한 매력을 많은 교수님들께서 강조하셨고,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공학과 과학을 아우르는 재료공학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언젠가 교수님께서 재료공학이란 모든 공학의 기초가 되는 재료를 이해하는 학문으로서 ‘종합선물 세트’ 같은 학문이라고 하신 말씀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무기재료, 유기재료, 금속재료, 생체재료를 아우르는 재료의 다양성만큼이나 유기화학, 결정학, 양자역학, 물리화학, 열역학, 구조역학, 광전자기학 등 재료공학이 다루는 학문은 깊고 방대했고, 그만큼 학부 공부가 어려웠지만 돌이켜 보면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Multidisciplinary) 연구를 하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기초를 닦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성장하고 또 연구자로 진로를 결정하게 된 것에 있어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학부과정 동안 선발되어 열심히 활동했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우수학생센터 공우 (SNU Tomorrow’s Edge Membership, STEM) 에서의 시간들이었다. 공우의 일원으로 다양한 학술적 사회활동을 기획하고 참여하는 동안 재료공학 이외에 다른 공과대학의 학생들과 아주 가깝게 교류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사회에 환원하고 소통하는 자세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또한 여러 미래와 진로 고민을 나누는 동안 석/박사과정 유학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난 어릴 때부터 연구원으로서의 미래를 꿈꾸던 아이가 아니었고, 학부과정 시작부터 석사과정, 박사과정 유학을 계획하던 것도 전혀 아니었다. 여행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의 삶과 외국 학교에서의 공부를 항상 궁금해하던 나는 학부과정 중 스물 세 살이 되던 해 독일 베를린 공과대학 (Technical University of Berlin) 재료공학부로 1년 동안 교환학생을 떠나게 되었다. 유럽 여행이 아닌 독일 대학생의 진짜 삶을 경험하고 싶었던 나는 조금은 무모하게도 20학점에 달하는 재료공학부 시간표를 짰다. 영어가 아닌 독일어로 진행하는 학부 수업을 따라잡기 위해 매일 저녁마다 독일어 수업에 다니고, 교실에 전자기기 반입이 안된다 하여 지금은 보기 힘든 두꺼운 샛노란 한독사전을 들고 다니며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진땀 빼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독일어로 공지된 휴강 안내를 알아듣지 못해 아무도 없는 교실에 영문을 모르고 홀로 앉아있던 날, 구두 (Oral) 시험에서 독일어 주어와 영어 동사가 섞인 이상한 언어로 전자들 (Electrons)의 움직임을 표현하던 날…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 시간들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후로 길게 이어진 유럽에서의 생활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설렘만을 남겨준 값진 시간이었다.

  독일에서 생존(!)해 나가며 외국에서의 삶과 독일어로 하는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스위스 취리히에 위치한 스위스연방재료공학연구소 (EMPA, Swiss Federal Laboratories for Materials Science and Technology)에서 풀 타임 (Full-time) 연구 인턴을 뽑는다는 공고에 지원했고, 이전 연구 경험이 거의 전무하였음에도 감사하게도 합격하여 학교를 휴학하고 스위스 취리히로 거처를 옮겼다. 학부 실험 수업들이 경험의 전부였던 내게 취리히에서의 1년은 나의 첫 번째 연구 경험이었고, 돌이켜 보면 나의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는 시간이었다. 그 무렵 막연하게 주체적이고 동적인 (Dynamic) 삶을 꿈꿨던 나는, ‘연구원은 지루하고 정적인 직업일 것’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나와는 전혀 맞지 않을 것이라고 편견을 가지고 지레 짐작했었다. 하지만 정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연구소는 직접 경험해 보니 그 어떤 곳보다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었고,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그리고 인간의 삶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재료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연구원의 모습은 내가 꿈꾸던 가장 진취적인 모습의 삶이었다. 나와 같이 연구자를 꿈꾸는 학생들 뿐만 아니라 현재 연구자로서 살아가고 있는 EMPA와 취리히 스위스연방공과대학교 (ETHZ, ETHZ는 EMPA와 같은 스위스 연방 도메인 (Domain) 소속으로 가깝게 교류한다.) 소속 연구원분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내가 학부연구인턴임에도 나를 독립된 연구자로서 존중해주는 많은 연구원과 함께 협업하고, 논문을 투고하고, 워크샵에 참석하는 등 연구의 수많은 과정들을 처음으로 가까이 지켜보고 직접 경험할 수 있었던 값진 순간들이었다.

  재료라는 학문을 점점 더 깊이 파고들수록, 인간의 삶에 가장 가깝게 위치하는 동시에 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이 생명공학 분야의 재료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나아가 더 배우고 고민해서 삶을 이롭게 하는 생체재료 연구를 하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유럽 사람들 특유의 여유가 묻어 있는 생활 방식과 행복을 최우선시 하는 삶의 태도에 매료된 나는 유럽에서의 유학을 결심하였다. 한국에서의 짧은 5개월간의 시간 동안 학부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졸업을 하고, 감사하게도 2015 대한민국 교육부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된 스물 다섯의 나는 영국 런던에 위치한 임페리얼 컬리지 (Imperial College London) 재료공학 석사 과정 (Master of Science in Advanced Materials Science and Engineering) 입학을 위해 다시 런던으로 출국하였다. 긴 방학 없이 12개월 3학기 과정으로 이루어진 영국의 석사과정은 수업과 연구가 어우러진 과정이었다. 학부를 마친 석사과정 학생들을 위한 과정인 만큼 최신 연구 자료들을 이용하여 최첨단의 연구 동향을 파악하고, 앞으로의 연구를 설계해보는 수업들이 인상깊었는데, 나는 재료 분석방법과 재료 컴퓨터 모델링과 더불어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생체 재료와 나노 (Nano) 공학을 중심으로 과목을 선택하였다.

  수업과 더불어 수행해야 하는 석사 연구과제는 재료공학과와 생명공학과 교수직을 겸임하시고, 바이오 의공학 연구소의 리서치 디렉터 (Research Director)이신 Molly Stevens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Stevens Group은 약 100명의 석사과정, 박사과정 학생들과 박사 후 연구원들이 함께 일하고 있는 아주 큰 규모의 연구실이다. 인간의 세포와 조직, 그리고 질병 그 자체에 대한 기초연구를 이끄는 연구원들과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질병의 진단과 치료를 위한 혁신적인 응용기술을 만들고자 하는 연구원들이 어우러지는 Stevens Group의 환경은 지금껏 보지 못한 신선한 충격이었다. 재료공학과 생명공학 뿐만 아니라, 생명과학, 화학, 기계공학, 화학공학, 전자공학, 유전학 등 모두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연구자들이 모여 인간의 건강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그야말로 분야의 경계를 허무는 (Multidisciplinary) 동적이고 (Dynamic) 생동감 넘치는 연구 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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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Stevens Group 동문회 (Alumni Party). 

 

  나는 석사과정동안 기존의 금 나노플라워 입자에 비해 형태 안정성이 극대화된 백금 코팅 금 나노플라워 입자 어레이 (Array)를 만들어 비표지식 (Labelfree) 표면라만증강법 (Surface-enhanced Raman spectroscopy)을 통해 복합 체액으로부터 다중화 된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재료과학적 접근을 제시하였다. 복합 체액에 포함된 내생의 화학적, 생물학적 물질들을 간편하고 빠르게 감지하는 방법 중 하나로서 연구가 활발한 비표지식 표면라만증강법은 물질의 화학적, 분자 구조적 정보가 내재되어 있는 고유한 (Fingerprint) 형태의 스펙트럼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표면라만증강이 활발히 일어나는 나노 입자 표면의 국소 부위 (SERS hot spots)에 근접한 물질들만 신호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서로 다른 자기조립 단분자막을 활용하는 방법을 통해 같은 물질임에도 다른 양상의 상호작용을 야기하여 라만 스펙트럼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고, 이를 통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음을 보이고자 하였다. 나는 기존의 구(球)형 나노입자에 복합 샘플을 섞어서 분석하는 일원적 방법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이 방법을 통해, 서로 다른 분자 특성을 가진 자기조립 단분자막을 나노 입자의 표면에 형성하고 이들을 분석에 활용함으로써 하나의 복합 샘플로부터 다원화된 정보를 얻어 이를 병의 진단에 활용할 수 있음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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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Stevens Group 에서 교외로 떠난 하이킹 (Group Week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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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Stevens Group의 12월 크리스마스 파티.

 

  석사 과정을 마치며 재료과학, 물리학, 생명과학, 화학, 통계학이 모두 융합된 연구주제에 커다란 흥미를 느낀 나는 Stevens Group의 생동감 넘치고 영감 가득한 환경에 더 오래 머물며 배우고 싶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 끝에 임페리얼컬리지 (Imperial College London)의 재료연구 박사과정 (PhD in Materials Research)에 새로이 입학하여 Stevens Group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였다. 박사 과정 동안에는 더 넓은 범위에서 나노과학을 접목한 새로운 광학 생체 분자 진단 플랫폼들을 제안하는 융합 연구를 수행하였다. 먼저 석사과정 연구를 확장시켜 여러가지 자기조립 단분자막이 형성된 플라즈모닉한 (Plasmonic) 금 나노기둥 기판을 사용해 다원화된 표면라만증강 스펙트럼 정보를 받아들이는 “인공 후각 (Artificial-nose)” 센서 칩 모델시스템을 제안하였다. 호주 멜버른의 RMIT 대학교의 Irene Yarovsky 교수님의 연구실과의 협업을 통해 분자동역학 시뮬레이션을 수행하여 자기조립 단분자막과 여러 분자들의 다양한 상호작용을 원자 단위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나아가 “인공 후각 (Artificial-nose)”에 영감을 받은 통계학적 주성분 분석 알고리즘을 제안함으로써, 서로 다른 복합 생체 샘플을 어떠한 사전 정보 없이도 보다 정확하게 구별해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였다. 해당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뒤에는 또 조금 다른 영역에 뛰어들어 광학 생체 분자 진단 플랫폼의 다른 형태로서 세포 내에 진단 센서를 전달하여 세포 내 생체분자들이 촉발시킨 광학적 신호를 분석하여 정량적 해석을 도모하는 생체 이미징 기반 시스템을 연구하였다. 필요에 따라 쉽게 디자인이 가능하고 생체 적합한 진단 센서를 만들기 위해, 염기서열의 형태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생체고분자 핵산 (Nucleic acids)을 소재로 한 다기능성 나노복합체 (Organic/inorganic hybrid nanocomposites)인 디엔에이 나노플라워 (DNA nanoflower)를 활용하는 센서를 새롭게 제안하였다. 디엔에이 나노플라워를 이루고 있는 염기 서열을 알맞게 디자인함으로써 전립선 암세포에 센서를 표적 전달할 수 있었으며 형광 공명 에너지 이송 (Förster energy resonance transfer) 원리를 통해 관측되는 광학적 시그널을 분석하여 암세포 내 “분자 단위의 에너지 화폐”라 불리는 아데노신 삼인산 (ATP) 유기화합물의 농도를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음을 보였다. 현재는 유럽연합을 아우르는 협동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금 나노입자와 핵산 프로브 (Probe), 그리고 핵산 처리 효소의 특이한 생화학적 기작을 이용하여 형광 공명 에너지 이송 원리가 기반이 되는 저비용 진단키트 디자인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표면증강라만분석 기반의 ‘인공 후각’ 센서의 상업화와 보급을 위해 다양한 고분자 디자인과 인공지능 (Artificial-nose) 및 클라우드 (Cloud) 기반의 데이터 처리 알고리즘을 도입하는 연구과제의 코디네이터를 맡아 여러 연구원들의 협력을 이끌고 있다. Stevens Group에서 보낸 지난 몇 년을 돌이켜보면, 나노과학, 핵산 (및 효소) 기술, 광학, 통계학, 생명과학, 데이터/이미지 처리 알고리즘 들을 종합한 미래 생체분자 진단 기술 플랫폼을 융합적으로 설계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여러 분석방법과 모델링을 통해 이를 깊게 이해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 생체 샘플들로 이러한 플랫폼의 성능을 입증해 보는 연구 과정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 배울수록 흥미 또한 크고 깊어져 앞으로도 BT분야의 독립된 연구인으로서 더욱 성장하고 싶다는 다짐을 매번 새롭게 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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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Stevens Group 친구들과의 즐거운 시간. 

 

  박사과정 동안 영국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크게 악화되어 학교가 (사실 나라 전체가) 반 년 정도 완전히 문을 닫고, 그 후로도 실험실 출입과 시설 이용에 제약이 많아지면서 이전만큼 많은 시간을 실험실에서 보내지 못하게 되었다. 집에서 컴퓨터 화면만을 통해 연구 교류를 하는 답답한 시간들을 지나오면서, 내가 얼마나 실험실에서의 시간들을 좋아하는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연구가 주는 즐거움이 얼마나 컸는지 새삼 깨닫고 있다. 하나 둘씩 팬데믹 전의 일상으로 회복되어 가는 지금, 나는 이제 곧 9년의 유럽 생활을 접고 미국 보스턴으로 새로운 도전을 위해 떠난다. 하버드 Wyss 연구소 (Wyss Institute for Biologically Inspired Engineering at Harvard),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의공학 연구소 (MIT Institute for Medical Engineering and Science), 그리고 브로드 연구소 (Broad Institute of MIT and Harvard)에 소속되어 계신 James Collins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감사하게도 얻게 된 덕분인데, 지금까지 공부하고 익혀온 여러가지 지식과 기술들을 바탕으로 합성생물학 기반의 진단과 치료 기술 플랫폼들을 새롭게 연구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연구자로서 나아갈 길을 고민함에 앞서 연구자로서 내가 지나온 모든 과정과 시간들에 가족, 교수님, 동료 선후배, 친구들의 도움이 항상 함께 해왔음을 떠올리며 삶과 시간을 기꺼이 공유해 주신 모든 분들께 이 글을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모든 소중한 분들을 떠올리며, 사람들의 삶을 이롭게 하는 연구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따라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배우며 차근차근 성장해 가는 사람이 되겠다고 한 번 더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