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BB와 우리
Date 2021-10-03 00:19:37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89
구윤모
명예교수 / 한국생물공학회 제 14대 회장
인하대학교 생명공학과
ymkoo@inha.ac.kr

지난 달, 학회로부터 원고를 요청받고, 내가 무슨 글로 남길만한 일을 했는가하고 망설였으나, 이미 발표하신 박돈희, 유영제, 박정극 교수님 등, 20대부터 반평생을 함께 한 여러분들과 지면을 함께 한다는 뜻에서 쾌히 승낙하였습니다. 2019년 초, 인하대학교 생명공학과 정년에 즈음하여 현역시절을 돌아보며 정리한 내용 중, 되도록 우리 한국생물공학회와 관련된 내용을 중심으로 추려보았습니다. 자화자찬의 치졸을 여러 곳에서 보였으나, 이 모두 함께 일을 해낸 여러 동료들의 업적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졸고의 제목도 이전 박교수님의 ‘KSBB와 나’를 본떠 ‘KSBB와 우리’로 하여 그간 오랜 세월 동고동락한 여러분들을 기리려고 하였으니, 박교수님도 이 제목을 과히 탓하지는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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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30년 넘게 근무하던 인하대학교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더불어 제2의 직장같이 생각하던 한국생물공학회의 업무로부터도 물러나게 되었다. 먼저 지금에 이르기까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에 더해 많은 재능과 소양을 물려주신 부모님과 조상들께 감사를 드리며, 동시에 이러한 재능을 제대로 계발하지 못한 내 자신의 게으름과 불성실에 대해 깊이 반성하는 한편, 이렇게 게으르고 무능한 나를 받아주고, 나름 집단에 기여하게 해준 직장과 사회에 감사드린다. 1987년 인하대학교 생물공학과(이후 생명공학과)에 교수로 부임하여 교수의 기본 직무를 수행하고, 몇 가지 교내보직, 그리고 한국생물공학회, 한국화학공학회, AFOB 등 여러 기관에서 과분한 직무들을 큰 탈 없이 마치게 된 것은 과내외, 학내외의 선후배, 동료들의 도움이 컸다. 이분들의 성원과 도움에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교수의 3대 본분


인하대학교의 생물공학과에 부임한 후, 교수의 3대 본분이라는 교육, 연구, 봉사 중, “실패한 연구는 있어도 실패한 교육은 없다”라는 신념으로, 학과에서의 교육을 위해 나름 열심히 강의를 준비하고, 성실하게 가르치려고 노력하였다. 1987년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귀국할 때, 퍼듀대학 화공과 교수였던 임홍철 박사께서 “학생들의 입장에서 가르치시오” 라는 말씀을 늘 염두에 두고자 하였다. 초기에는 “학생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우수한 교수를 만든다”며 학생들의 자발성을 기대하기도 하였으나, 학생들은 우수한 교수 만드는 데까지 역량이 미치지 않았다. 이런 저런 해외 강의와 세미나를 통해 보면, 일본은 우리와 비슷하였으나, 중국 학생들의 상대적으로 활발한 질문은 눈에 띄었다. 근래에 들어, 교육에 있어 예습과 토론을 강조하는 Flipped Learning을 알게 되어, 전공에 따라 다르겠으나, ‘학생을 배우는 프로’로 만드는 좋은 방법이라 소개하고 있다. 한편, 시대의 추세가 아니라도, 교육자로서 이러한 세부기법들을 본능적으로 파악, 좀 더 강의에 녹여 들였었으면 학생들이 전공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지식을 얻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대부분의 교수들과 같이, 나의 연구경력은 대학원 석사과정으로 시작하였다. 1975년, 한국과학원 (현 KAIST)에 입학하여 소속과인 화학 및 화학공학과의 김영걸 교수님과 생물공학과의 유두영 교수님을 공동지도교수로 하였고, 실제 학위를 위한 연구활동은 생물공학과에서 수행하였다. 석사학위는 당시 생물화학공학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미생물발효에 의한 물질생산으로서, ‘Production of Sorbose from Sorbitol using Two-stage Continuous Bio-reactor System’을 주제로 하였다. 석사 학위 이후, 한국과학원 규정에 따라 3년간 한국과학기술연구소 (KIST), 화학공학부, 화학공정실에서 故 윤창구 박사 주도로 인산우라늄추출 과제를 수행하였다. 기억에 남는 것은, 인산우라늄 추출에 있어 빠른 상분리를 위한 여과포의 사용, KIST L5 건물에서 5천 리터 반응기를 이용한 추출제 합성, 영남화학 소재 실험공장에서의 현장생산 등이 있어, 소장 화학공학자로서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윤박사님은 훌륭한 가문출신(윤보선 전 대통령의 조카이나, 윤박사님을 보니 그 집안이 훌륭한 집안인줄 알겠다고도 했다)으로 국내 영어신문인 ‘The Korea Times’에 고정컬럼을 쓰는 등, 과학기술은 물론 역사 등 인문분야에 있어서도 명쾌한 논리와 추진력으로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에서 큰일을 하실 것으로 기대되던 분인데 1991년,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어 큰 안타까움으로 남아있다. 1980년 8월 미국 Purdue 대학에 유학하여 School of Chemical Engineering에서 Phillip C. Wankat 교수의 지도로 ‘Size Exclusion Cyclic Separation’의 주제로, 생물분리기술의 workhorse라 할 수 있는 크로마토그래피의 기술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박사과정 중 연구한 크로마토그래피의 모델링, 스케일링은 특정공정의 실질적 연구이었으나, 욕심을 부려 크로마토그래피의 범용적 기초연구에도 관심을 두었더라면 이 분야에 더 크게 기여하였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1991년 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 화공과 (Dept. of Chemical Engineering and Material Science)의 임홍철 교수실에서의 연구년은 Dept. of Microbiology and Molecular Genetics의 G. Wesley Hatfield 교수 연구실에서의 ‘Bacteriophage double lysogen을 이용한 유용단백질의 생산과 동시 파쇄’의 연구가 중심이었다. 화공과의 홍주안 교수와의 비선형크로마토그래피 동특성 연구도 박사학위의 주제를 확장하는 의미가 있었다.

2000년 7월 ‘초정밀생물분리기술연구센터 (Center for Advanced Bioseparation Technology, BSEP)’가 1년의 재수 끝에, 한국연구재단의 우수연구센터 (ERC, Engineering Research Center)에 선정되어, 센터장으로서 당시 국가연구비로는 가장 큰 액수인 년 10억 원을 지원받아 9년간 운영하였다. ERC의 본업인 연구관련 내용은 그간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하였고, 그 외에 당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는, 현재 국내를 대표하는 바이오시밀라 제조사인 셀트리온이 2003년 3월부터 BSEP 내의 일부공간과 시설을 임대하여 초기 연구소를 설치하고 연구협력함으로써, 이후 세계적인 바이오회사로 성장하는 데 일역을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ERC 선정 직후의 2000년 연구년에는 Purdue University, School of Chemical Engineering 의 Linda Wang 교수실에서 SMB (Simulated Moving Bed, 모사이동상)의 연구를 수행하였고, 이는 이후 ERC 연구의 주요과제가 되었다. 2010년의 연구년은 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 Dept. of Chemical and Biomolecular Engineering의 Wesley Henderson 교수실에서 보냈고, 실제연구는 Dept. of Materials Science and Engineering의 Yaroslava G. Yingling 교수와 이온성액체에서의 효소의 구조적 거동에 대한 molecular dynamic simulation 연구를 주로 하였고, 이는 생물공정공학자로서는 새로운 시도였다. 9년간의 ERC 운영에 대해 돌아보면, 소속연구자들을 지원하여 다양한 기술의 연구활성화도 중요하지만,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인하대학 내에 CMO (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 류의 생물공정센터와 같은 중앙집중적인 기관의 설치도 바람직했다. 실제 2003년, 국내 유명 제약사의 지원금을 확보하고, 인하대학의 부지제공으로 ‘인하 BT산학관’의 설립을 기획하였으나, 국내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그 설립이 무산된 것은 몹시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와 같이, 인하대학에서 크로마토그래피 기술을 중심으로 하여, Bacteriophage double-lysogen, Expanded Bed Adsorption, Elastin-like polypeptides, Ultrasonic sedimentation, Simulated Moving Bed 등, 공정기술이든 기초기술이든 생물공정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자 초지일관 노력하였다. 연구비 지원이 어려운 생물공정분야에서 나름 꾸준히 연구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ERC의 혜택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공정연구에서 필수적인 산학협력에 있어서는, 제지의 효소적 탈묵 (삼화제지, 대한펄프), SMB 국산화 (C&S), 이온성액체 공정 (C-Tri), 이온성액체 개발 (LG Hausis) 등의 연구를 위해 여러 기업체들의 많은 지원이 있었고, 초기 ‘한국발효기’ 사의 발효기 지원과 협력은 공정중심의 우리 생물공학과 운영에 크게 도움이 되었고, 이를 감사드린다.

이러한 생물분리 중심의 공정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아직 관심을 거둘 수 없는 다음과 같은 과제들이 있어, 정년 후에도 어느 정도 심신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면,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어떠한 형태로든 나름의 연구생산성을 추구해 보고 싶다.

이온성액체는 상온에서 액상을 유지하는 이온성물질로서 비휘발성과 다양성으로 인해, 'Green Solvent', 'Designer Solvent'라 불리는 유망 연구분야이다. ERC 초기에 이온성액체 연구를 시작하여 생물분리에의 응용, 이후 범위를 넓혀 효소반응에 응용, 그리고 Molecular Simulation 기법을 통해 분자수준에서의 효소반응거동을 연구하였고, 근래에는 새로운 이온성액체의 합성 등을 시도하였다. 순수물질로서 백만 개 이상이 가능하고, 현재 만여 개가 알려져 있으며, 500개 정도가 시판되고 있는 이온성액체는 용매적 특이성, 그리고 각 기술 분야에 응용성이 매우 커, 이후 관심 있는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하고 싶은 분야이다.

교육과학기술부의 미래유망파이오니아 선행기획연구과제(2012년)로 수행한 ‘통합반응장 (Unified Reaction Field) 기반 바이오 복합소재 개발’ 주제는, 기존의 화학반응의 거동을 온도, 압력, 부피, 농도(들) 등 전통적인 열역학 변수가 아닌 분자표현자 (molecular descriptor)로 표현, 최적화하고, 빅데이터적 기법을 이용하여, 알려진 반응에 기초하여 알려지지 않은 반응을 포함하여 모든 화학반응의 반응특성을 통합반응장으로 예측한다는 내용으로서, 섬유소를 용해하는 최고의 이온성액체를 합성하는 좋은 결과를 얻었고, 이후 적당한 기회에 다시 연구 추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일반에게 ‘유용미생물’로 알려진 EM (Effective Microorganisms)은 효모, 젖산균, 광합성균의 최소 3가지 미생물로 이루어져 식품, 환경, 의료 등 여러 분야에 응용되고 있는 혐기성 혼합배양체로서, 현재 그 다양한 응용성에 비해 이론적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미생물계이다. 적절한 수학적 모델링과 실험적 재현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장차 지속가능한 자연생태계의 근간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과제로서, 일생을 바쳐 연구하고 싶은 분야이다.

교수의 본분 중 세 번째, 봉사활동으로는 학과와 대학에서의 보직, 전문학회에서의 활동 등이 있었다. 전문학회 활동에 수반되는 각종 국제협력활동을 적지 않게 수행하였고, 돌아보면 이 활동에 의해 다른 사람들과는 좀 대비되는 경력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전문학회 관련 활동으로는 여러 사업 중, 초기에 한국화학공학회, 술어제정위원회의 위원으로 ‘화학공학술어집, 3판(1998)’ 발간에 참여, 생물화공부문위원회 총무간사로서 회원들의 교류증진을 위해 ‘생물화공 인명록(1994)’을 발간하였고, 박태현 교수와 함께 만든 ‘생물화학공학술어모음(생물화공, 1994)’에는 젊은 시절, 전공에 대한 애착과 더불어,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충성심이 보인다.

이상과 같은 봉사활동에 있어 나름 의무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임했으며, 각종 국제학학술대회의 창립이나 개최에 대한 기여는 그 기간이나 연속성으로 보아 비중이 컸다고 본다. 이 중에도 APBioChEC (Asia Pacific Biochemical Engineering Conference, 1차 (경주, 1990) 이후 매 2년, 2011년 이후 ACB로 변경), ACB (Asian Congress on Biotechnology, Shanghai (2011) 이후 매 2년), YABEC (Young Asian Biological Engineers’ Community, 1차 (서울, 1995) 이후 매년), 한중지역바이오심포지움 (1차 (중국 Wuxi, 1996) 이후 매년, 2011년까지), ARS (AFOB Regional Symposium, 1차 (Nepal, 2011) 이후 매년), AFOB Summer Forum (1차 (중국 Qingdao, 2016) 이후 매 2년) 등의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특기할 것은 위 여러 모임들이 2008년 창립된 AFOB (Asian Federation of Biotechnology)의 주관 하에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들의 시초는 1990년 시작된 APBioChEC 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자리를 빌려 APBioChEC을 창립한 장호남 교수에게 큰 공을 돌리고 싶다. ACB는 APBioChEC의 대를 잇는 AFOB의 대표 학술대회로서 2019년 Taiwan에서 14차 대회를 갖는다. YABEC은 3차 APBioChEC (싱가폴, 1994)에서 Teruyuki Nagamune (일본 동경대학), Zhiguo Su (중국과학원), Yew-Min Tzeng (대만 조양기술대) 교수들을 접촉, 4명이 뜻을 같이 하여, 다음해인 1995년, 서울대학 호암생활관에서 제1차 대회를 출범시켰다. 2018년 Taipei에서의 24차에 이르기까지, ‘Advanced Biotechnology based on Friendship’ 에 근거한 교류를 통해, 아시아의 많은 젊은 연구자들이, 학문과 연구에 있어 서로 친구로서, 중진을 거쳐 대가로 발전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제1차 YABEC 참가자들 중, Jian Chen (Wuxi University of Light Industry, 이후 Jiangnan 대학 총장) 교수와 구성하여 1996년 시작한 한중지역바이오 심포지움은 초기 지리적으로 마주보는 한국의 인천지역과 중국의 상해지역을 중심으로 개최되다가, 2003년부터 그 개최지역을 한국은 전지역, 중국은 동북3성 지역으로 국한하여 미래의 남북통일에 대비한다는 희망을 가지고 준비하였다. ARS는 초기에 한국과 개최지역 간의 양국 세미나로서, 상대적으로 발전이 뒤진 지역의 생명공학 활성화를 목적으로 열렸으나, 근래 들어 AFOB 참여국 전체가 참여하는 심포지움으로 발전하고 있다. AFOB Summer Forum은 ‘Davos Forum for Asian BT’를 슬로건으로 하여 나와 중국의 George F. Gao교수를 위원장으로 하여 창립개최한 포럼으로서, 장차 ‘백두포럼’의 이름으로 BT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발전과 평화의 산실로 발전시킨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AFOB는 근래, 유럽의 EFB (European Federation of Biotechnology)와, 특히 ACB와 ECB (European Congress on BT)의 각종 joint symposium/session 들을 통해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93년 Firenze에서의 제6차 ECB에 처음 참가하여, 그 학술수준과 운영규모에 감탄하였으나, 이제 그들과 어깨를 같이 하는 ACB 및 AFOB를 만들고 운영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큰 보람을 느낀다.

상기 AFOB 관련 학술대회 이외에, 이온성액체대회 (COIL, Congress On Ionic Liquids)는 2007년 요꼬하마에서의 2차 대회 이후 연속하여 한국을 대표하여 참석하였고, 2015년에는 조직위원장으로서 COIL-6를 제주에서 개최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 분야의 세계적 권위인 영국의 Kenneth R. Seddon 교수 (Queen’s University of Belfast)와는 개인적 친분도 쌓았고, 가깝게는 하성호 (한남대학), 이상현 (건국대학), Lan (인하대학) 박사들이 학회발표 및 대회개최를 성실히 도와주었다. IBS (International Biotechnology Symposium)은 생명공학 분야를 대표하는 국제대회로서, 개인적으로 여러 번 참석하였고, 2012년 대구에서의 IBS는 조직위원장으로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렀고 이를 보람 있게 생각한다. 특히 대구 IBS는 국내 최초로 한국생물공학회, 한국화학공학회, 한국식품과학회, 대한약학회들이 공동주최하였고, 이후 KFOB (Korean Federation of Biotechnology)를 결성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국내 생명공학 분야 주요학회의 연합체를 최초로 이루어 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이 또한 박정극, 박태현교수를 포함하는 여러분의 공동노력이었음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뒤를 돌아보며


지난 30여 년간, 평소의 준비와 생각과는 달리, 지나간 일들에 대해 뒤돌아보고, 좋은 일이든 아쉬운 일이든, 진지하게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했고, 이제 정년이라는 사람이 만든 시간의 구분에 맞닥뜨려서야, 특히 게으른 사람들에게는, 비로소 과거의 기억을 찾아가는 기회를 갖게 되는가보다.

교육에 있어서, 생물(생명)공학과 학부 3학년 그리고 4학년 (근래 3학년 2학기)에서 강의한 ‘생물화학공학’과 ‘생물분리공학’은 생물공정분야에 있어 핵심적인 과목으로, 생산 중심의 산업체에서는 필히 요구하는 과목이다. 특히 ‘생물화학공학’은 전공필수 과목으로 학생들이 비중있게 공부한 과목으로서, 교재로 사용한 Michael L. Shuler 교수의 ‘Bioprocess Engineering’은 본인 포함 4명이 ‘생물공정공학’으로 번역하여, 국내에서 소위 ‘노란책’이란 별명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바쁜 중에도 1, 2, 3판을 큰 무리 없이 번역한 것에 대해 4명을 대표하여 자찬한다. 한가지는, 저서가 아닌 번역서가 잘 팔린다는 것도 학자적인 입장에서는 꼭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어서, 장차 기회가 되면, 특히 생물분리공학과 관련하여 좋은 교재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아직 남아있다.

그동안 교내외에서 많은 연구자들과 함께 공동연구를 수행하였는데, SMB (Simulated Moving Bed) 관련연구로 김인호 (충남대), 이광순 (서강대) 교수, 그리고 크로마토그래피에서의 유변현상에 대한 simulation 연구를 위해 안경현 (서울대) 교수, 이온성액체의 합성을 위해 김영규 (서울대)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특히 김인호 교수는 우리나라의 생물분리기술을 대표하여 초기 국내외에서 함께 많은 활동을 벌였다.

봉사활동에 있어서는, 전문학회로서, 대부분의 활동은 한국생물공학회를 근거로 이루어졌으나, 1980년대 생물공학이 아직 초기단계에 있을 때에는 한국화학공학회, 생물화공부문위원회를 중심으로 일하였다. 당시 송지용 위원장을 모시고 1994년 총무간사를 했고, 이 때 송지용 위원장의 성원 하에 YABEC을 창립할 수 있었다. 송 위원장은 LG 생명공학연구소 소장 재임 시, 우리 과의 현장방문을 초청하고, 지난 10여 년간, ‘바이오의약품 제조관리특론' 등 산업체의 실무경험에 바탕한 외부강의를 해주고, 이후 개인적으로는 나를 한국공학한림원 회원으로 추천하는 등, 여러 가지로 도와주시어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한편 내가 위원장을 할 때는, 고려대학교 화학공학과, 김익환 교수가 총무간사로서 성실히 업무를 수행해 주어 지금도 형제같이 느껴진다.

2011년 8월 몽골에서의 ARS 참가 시, 전날 밤, 구름 사이 달빛에 반한 때문인지, 일찍 잠이 깬 여러분들이, 누구랄 것없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산책에 나섰다. 한국과는 달리, 나무가 적고 풀들이 많아 산야의 윤곽이 뚜렷한 자연풍광과 젊은 회원들의 건강한 인품에 매료되어, 산책에서 돌아와 당장 아침식사 중, 이러한 기상을 살려 우리 한국생물공학회에 등산회를 만들자 제안하였고, 여러분의 호응을 얻었다. 귀국 후, 이화여대, 박진병 교수를 젊은 총무로 하고 직전 전임 학회회장을 회장으로 하여 등산회가 결성되었고, 매년 춘추계 학회에 즈음하여, 개최지 인근의 명산을 찾아 산행을 하게 되었고, 지금도, 이제는 그렇게 젊지 않은 박교수를 중심으로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APBioChEC을 시작으로 하여 많은 국제활동을 하였으나,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YABEC을 만든 일로서 (아래, ‘Retrospect and Prospect of YABEC' 참조), 1995년 6월 22일 저녁, 두 명의 젊은 중국인 교수가 땀에 젖은 얼굴로 찾아와서, 내일 YABEC에 참가하기 위해 Tianjin에서 17시간 배를 타고 인천항을 통해 나를 만나러 왔다는 것이다. 기쁜 미소를 짓는 그들과 힘찬 악수를 하면서 나는 YABEC의 성공을 예측할 수 있었다. YABEC은 50세 나이제한이 있는 것뿐 아니라, ‘Biofun' 등 다른 학회에 없는 특별세션을 운영하고, 저녁 만찬에서는 전통적으로 각 지역 참가자들이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등 바이오 문화교류와 우정을 다지고 있다. 본인도 오래 전 Biofun 세션에서 ‘Words in BT'의 주제로, ‘갈등(葛藤)’, ‘청출어람(靑出於藍)’ 등 한국, 중국, 일본의 공통단어와 이들의 발음을 소개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또한 제7차 APBioChEC (제주, 1995)에서는 사무총장을 맡아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렀고, 특히 개회식에서 인사말로, “1차 대회 레이디투어가이드 출신의 내가, 이번 대회에서 사무총장을 맡았으니 이 얼마나 성공했는가!” 하여 장내의 박수를 받았다. 물론 학회발전을 위한 젊은 회원들의 분발을 당부하는 멘트였다. 당시까지 이렇다 할 협동사업을 해보지 않은 국내 바이오 관련 학회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임원 여러분들이 합심하여 성공적으로 개최한 IBS (대구, 2012)는 다른 전문분야들도 모범을 삼을 만한 기념비적 행사였다. COIL-6 (제주, 2015)의 개최는 국내 연구자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준비가 어려웠고, 비록 성공리에 끝나기는 했지만, 그 준비과정이 힘들어, 비록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특히 Seddon교수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이온성학회의 설립을 추진하지 못했다. 아쉽기도 하나, 지금 판단에도 설립 후 운영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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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APBioChEC를 필두로 AFOB 산하의 각종 학회 등 여러 국제학술 대회를 성공적으로 운영하였고, 이에는 한국생물공학회와 한국화학공학회 생물화공부문위원회 회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봉사의 힘이 컸다. 특히 박정극 (동국대), 박태현 (서울대), 김승욱 (고려대), 오덕재 (세종대) 교수들의 일치단결의 협력이 그 주동력이었다. AFOB 초대회장을지낸 Yoshida 교수는 “당신들은 그 오랜 기간 어떻게 그렇게 잘 협동할 수 있었느냐!” 하였다. 본인이 국제활동에서 쌓은 업적이 있다면 이것은 모두 이분들과의 협력으로 이룬 것이다. 국외에서도 수없이 많은 협력이 있었으나, YABEC을 함께 결성한 Nagamune, Su, Tzeng 교수들과의 협력은 무조건적이었으며, 이제 이들과는 서로 형제애를 공유하고 있다. 이렇게 연구비가 생기는 것도, 논문이 나오는 것도 아닌 AFOB에 대한 이 분들의 수십 년간에 걸친 봉사는, AFOBNewsletter 창간호에 서술한 것처럼, 그렇게 태어난, 소위 그 사람의 업(業)이 아닌가 한다. 그 업을 이루어가는 동안,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고, 또 교육, 연구 등, 각자의 본업에 얼마나 차질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그 동안 쌓은 인연, 협력, 그리고 전통들을 돌아보면, 이제 다시 세월을 돌린다 해도 같은 길을 갈 것이라 확신한다.

교수로서 32년간 수천 명에 달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교수의 최고본분인 강의, 교육을 수행함에 있어, 나로서는 열성을 다했지만, 최고의 강의내용, 강의기법 등을 준비, 동원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학생들이 받은 성적에 관계없이, 학생들에게 더 많은 지식을 심어주고, 지식의 기쁨을 느끼고, 나름 더 많은 진리와 비전을 심어주지 못한 일들을 통탄하며 크게 반성한다. 이는 어찌 보면 교수로서는 돌이킬 수 없는 죄악으로서, 혹시 어떤 심판을 받게 된다면 이점에서는 피할 수 없는 유죄이다.

대학원생들과는 더 많은 시간, 실험실에서 실험하고, 고민하고, 인간적으로 가까이 하지 못한 일들이, 당시는 느끼지 못했지만, 시간이 모두 지나, 지금 이제야 돌아보면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 그저 졸업시켜야 할 의뢰인 정도로 알고, 한사람, 한 사람이 다 한 개의 우주라는 것을 놓쳐버린 무책임, 무관심에도 반성한다. 동하절기 지방에서의 각종 심포지움에 학생들과 참여해서도, 저녁에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하느라, 학생들과 담소하며, 심하게 취해보지도 못했으나, 이를 잘 이해해 준 학생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대학원생들에게 항상 소속집단에 충성하라, 교수인 내가 아니라 실험실에 충성하라, 나도 내 실험실에 충성하는 사람이다라고 했고, 학생들이 이를 잘 받아들인 덕분이라 생각한다. 이는 정치도 마찬가지여서, 여야 정치인들이 어떤 대결을 벌여도, 이들이 마음속에 국가, 민족,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류에 대한 충성심만 가지고 있다면, 국가운영, 세계운영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실험실 운영에 있어서, 나는 많은 축복을 받았으니, 모든 학생들이 학위과정 중, 실험실 안팎에서 큰 사고 없이, 제때에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여 자기에게 주어진 직분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졸업 후, 세계적 바이오기업이 된 셀트리온 등 여러 바이오 산업체, 그리고 대학에서 근무하며 국가 산업발전에 매진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흐뭇하다. 지난해 12월 과내 정년기념식, 졸업생들과의 자리에서 “나는 참 부자다”라 한 이유가 그것이며, 이는 진심이었다. 앞으로 더 부자가 되기 위해, 제자들 부자 만들어 주기에 노력할 것이다.

이상과 같이 교육, 연구, 봉사활동에 대해 뒤돌아보았고, 그동안 교수, 연구자로서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나름 자신의 양심과 사회의 규범에 따라 행동했다고 생각하나, 개인의 욕심으로, 또는 본의 아니게 정당하지 못한 일들을 저지른 것을 이번 기회에 반성하고자 한다. 공사의 여러 가지 경쟁에 있어 나 자신, 내 과제를 과장한 것, 각종 심사 등에 있어 내 집단을 위해 공정치 않게 노력한 것들이 생각나며,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본 모든 분들과 집단에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러나 모든 일에 음양이 있듯이, 소속한 학교와 학회에서 나름 사명감을 가지고 임해, 그 사회의 발전에 적으나마 기여했다고 믿는다.

이제 외부 활동을 떠나, 내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내가 보기에도 특이한 면이 있음을 인정해야겠다. 살아오면서 늘 염두에 두었던 것 중의 하나가, 일상사에 있어 아주 기본적인 것이지만, 약한 사람들을 배려하고, 이와 더불어, 사회생활 하는 데 있어 파당을 짓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고, 심지어 각종 엘리트 그룹과도 거리를 두고자 했다. 여기에 더해 어느 날 심취해, “지식인은 선동되지 않는다”라는 말을 만들어, 글을 쓰고, 이에 충실하게도 주위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좋다는 말을 삼가고, 좋은 친구들의 그룹이 있어도 이들과 아주 친해지고, 어깨동무하는 일을 피했다. 이것은 천성에 의한 것인지, 혹은 초중교 시절에 접한 몇 권 위인전의 영향인지 모르겠으나, 이러한 습성은 분명히 나를 다른 이들과 차별되게 했을 것이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내 삶에 어떤 결과를 주었는지, 혹시 바라기는 진리, 정의에 가까운 삶을 살게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서 파당의 세속적 즐거움, 소속감을 상당 부분 앗아간 것은 분명해 보인다. 돌이켜보면, 또 이러한 자세로 인해 얼마간의 주위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었겠으나, 대신 많은 친한 사람들이 섭섭하게 느꼈을 것으로 안다. 이는 학교의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우수한 학생들에게 느끼는 당연한 호감을 비교육적인 편애라 생각하여,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되도록 삼갔으니, 이 또한 여러 제자들이 섭섭해 했을 것이고, 이제 대부분이 나를 떠난 상황에서 이를 반성한다. 내가 내 마음 속을 모르는데, 어찌 남의 마음을 알겠는가마는,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인간관계를 잃어버리기도 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자세로 인해, 내 주변에서 내게 얻을 것이 없다 느낀 사람들은 떠났겠으나, 좋은 친구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는 것은 과분한 복이라 생각한다. 또한 그동안 여러 집단에서 사회활동하면서,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남을 해하거나 직간접적으로 괴롭힌 기억이 일단은 없으니, 이는 기본소양에 더해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일이겠으나, 성품이 고고하지 못한 나로서는 이를 그나마 지켜낸 것은 다행이라 생각한다.

 

앞을 바라보며

 

학교 교정을 걷다보면, 전에 없이 나무들이 굵어져 있는 것을 느낀다. 수령의 반에 해당하는 시간을 학교와 함께 했으니 그럴 것이고, 이 나무들이 앞으로 더 커지고 굵어질 것을 생각하면서, 지난 32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보낸 것에 감사하고, 나를 이은 젊은 구성원들에 의해 펼쳐질 우리 생물공학계, 특히 한국생물공학회의 앞날에 발전과 영광이 함께 하길 기원한다. 지난 수십 년간 APBioChEC 으로 시작하여 현재 AFOB에 이르기까지 각종 학술관련 국제교류에 많은 공을 들였다. AFOB가 지난 10년간, 여러 회원국, 특히 한국 임원들의 노력에 의해 많이 발전하고 있고, 이제 공정한 투표에 의해 그간 AFOB에 많이 기여한 우수한 사람을 대표로 내세울 정도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어, AFOB는 국제학술기관으로서 이제는 자생력을 확보했다고 믿어본다. AFOB는 앞으로도 우수한 구성원들에 의해 더욱 발전하겠지만, 이들의 뒤에서 Archives 제작, 인적 네트워크 구성 및 연결 등, 내가 할 수 있는, 또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AFOB를 지원하고자 한다. 

이제 남은 시간을 살아가는 데 있어, 보기에 늘 진리, 정의의 편에 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생활에 있어 호불호가 너무뚜렷한 것보다는, 대단한 개혁과 발전은 젊은 현역들에게 맡기고, 크게 틀리지 않다면 그저 시류에 따라가는 자세도 좋다고 본다. 그러고 심신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생활함에 있어 어떤 형태로든 생산성은 늘 염두에 두고자 한다. 모든 사람에게 생일이 있고 이를 축복하고 있다. 비록 춘하추동이라는 계절의 흐름이 있기는 하나, 어떻게 보면 생일이란 가없이 흐르는 시간에 인위적인 매듭을 지어놓은 것이라, 미래로 한없이 열려있는 시간에 정년이라는 나이의 제한을 두고 생산적인 시기를 인위적으로 마감하는 것도 제대로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교수 시절, 학생들과 주변사람들에게 부지런히 잘 살 것을 계몽했다.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공인의식과 신독의 자세를 유지하며 생활할 것이며, 제법 시간이 지난 후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두고 볼 것이다. 건강은 중요하고, 특히 신체의 건강이 정신의 건강을 지배한다. 누가, 하늘을 나는 것이, 물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땅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라 했다. 그 동안 해온 것처럼 산과 들을 다니면서 한걸음, 한걸음을 즐기도록 하고, 앞으로 어떻게 그 발걸음이 느려지는가도 큰 아쉬움 없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지켜보도록 하겠다. 이제 시간이 지나, 운이 좋으면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이 제 수명을 다하는 날을 맞을 것이다. 그 날까지 가족, 친척과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살아갈 것이고, 그 중에도 나름 생산성을 내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모처럼 생명을 내려준 자연에 대해 예의를 지키는 일일 것이다. 열심히 살고 난 그 이후는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주제이나, 일단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두고자 한다.

어제 저녁, 40년 넘어 처음 만난 친구들과 반갑다고 마구 떠들며 먹고 마셨더니, 뱃속 양심이 불편해, 아침 일찍 동네 산길에 나섰다. 여기는 여러 친지들을 약속 없이도 가끔 만나는 곳이다. 얼마 전까지도 길을 덮던 낙엽들은 숲으로 들어가고, 이 자리엔 아기 잎들이 새 삶을 찾아 얼굴을 내민다. 몇 년이 길을 걷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낙엽들은 걱정이 없겠다, 늘 새순이 뒤를 받쳐 주니까. 심지어 유전자가 똑같은 후손들이, 자기들이. 옛날 그리스의 어느 철학자가 살아가면서 사는 방법 뿐 아니라 죽는 방법도 배워두라 했단다. 나못지 않은 사람들이 나못지 않은 멋진 생활을 이어가는 미래에 대해 내가 걱정할 일이 무엇인가? 혹시 먼 미래 우주에 생명이 사라진 영겁의 시간이 두려울 뿐, 인간이 아니라면 동물, 까짓것 식물이면 어떠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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