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러도 괜찮아
Date 2021-04-23 15:01:21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480
박해성
박사후 연구원
재단법인 농축산용미생물 산업육성지원센터
haeseong@cialm.or.kr

글을 시작하며 


 ​처음 원고 의뢰를 받았을 때, 내 글재주나 연구업적이 크게 뛰어나지 않아 무엇을 쓸까 깊은 고민을 하였다. 지난 몇 년간의 학위과정을 보내면서 가졌던 경험들과 기억들 그리고 박사후 연구원으로 첫 발을 내딛기까지의 과정을 편안하게 적기로 하였다.

 

연구원으로의 시작 


석사,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배움을 쌓았던 생물공학과는 달리 학부는 식품영양학을 전공하였다. 20대에는 전혀 다른 일을 하다 늦깎이로 학부를 시작하였다. 사실 학부 졸업학기 전까지는 대학원까지 진학하리라는 생각은 못했다. 졸업학기에 향후 진로를 고민하는 중에 기왕 늦게 시작한 것 끝까지 해보자라는 신념으로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나는 늦깎이 학생인지라 학과에 또래친구가 많이 없었는데, 4학년 첫 학기 한 수강과목의 조별과제 팀원으로 동년배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이 친구의 친구가(지금은 연구실 선배인) 박용철 교수님 연구실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어 그 선배의 소개로 교수님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에 사실은 학교 내 다른 연구실에 학부연구원으로 연구하기를 희망하여 연락을 드렸으나 뜻대로 안되어 심란해 있었는데, 박용철 교수님께서는 흔쾌히 학부연구원으로 받아주셔서 기분이 매우 좋았던 기억이 난다. 이후 학부연구원으로 기초적인 실험과 연구원으로서의 기본을 배우니 흥미가 생겨 다음 연도인 2013년부터 석사학위 과정을 시작하였다.

 

석-박사 학위과정 


 학위 기간 중 주로 연구했던 분야는 대사공학을 기반으로 재조합 효모를 이용한 바이오에탄올, 유기산 및 생리 유용물질의 생산과 대사체분석을 통해 구축된 재조합 미생물의 대사를 분석하고 이를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고 개선방안 등을 제시하는 것이다. 효모는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이용해 온 유용미생물의 하나로 식품에 널리 사용되기도 하지만, 세포분열 주기가 짧고, 유전자 제어가 비교적 손쉽기 때문에 생물공학에서 모델균 주로 널리 쓰이는 미생물이다. 석사과정 기간 중에는 TATA-binding protein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고삼투압 내성을 지닌 효모를 배양하여 고농도 고수율의 바이오에탄올 생산을 하는 연구를 주로 수행하였다. 해당연구를 수행하면서 미생물 발효에 대한 기초를 쌓았고, 동시당화배양 (Simultaneous saccharification and fermentation, SSF) 등의 실험도 수행했다. 당시에 카사바를 이용한 동시당화배양을 준비하고자 마른 카사바 껍질을 깎아 지퍼백에 넣어 두었는데 실험실에 숨어있던 쥐가 카사바를 다 갉아먹어 연구실 선후배들과 찍찍이와 쥐덫을 동원하여 쥐는 잡았지만 카사바는 결국 다시 분양받을 수밖에 없었던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기억이 난다. 내가 수학한 국민대 바이오발효융합학과의 장점 중 하나는 학과 내 30 L와 300 L 바이오리액터 기기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산업스케일에 비하면 소규모이지만 학교 연구실 단위에서는 제법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이 장점을 나도 십분 살려 다양한 방법으로 효모의 대량배양 연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고 일반적으로 배우기 힘든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박사과정 기간에는 재조합효모를 이용한 유기산 생산과 이소프레노이드 생산 관련연구를 수행하였다. 재조합 벡터와 균주를 만드는 일은 석사 때부터 늘 하던 일이었지만 특히 크리스퍼 Cas9 실험을 처음 진행했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당시에도 크리스퍼 cas9은 비교적 널리 알려 있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보급화가 되어 있지는 않았다(고 들었다.). 지금은 누구나 쓰는 방법이지만 당시 나에게는 생소했던 DNA assembly tool을 활용하여 guide RNA expression vector를 재구축하고 효모에 적용하여 손쉽게 여러 유전자를 편집하는 툴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실패도 많았지만 실험에 성공해서 원하는 타겟 물질을 생산하는 재조합 미생물을 구축했을 때는 피로도 잊고 즐거워했었다. 이소프레노이드 생산은 추출방법과 조건을 설정하는 일이 생각보다 까다로워 여러 가지 농도를 설정하여 최적화된 추출법과 분석조건을 찾아내는 일은 힘든 반면 한 번 설정을 잘 해놓으면 배양에서 분석까지 편하게 실험할 수 있었다.

 석사 2년차부터 박사과정 동안 한국바이오협회에서 주관하는 바이오 GMP 실무교육의 실습교육 강사로 매해 여름 실습수업을 진행하였다. 바이오 GMP교육은 석박사 학위를 마친 분들 중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생물공학 관련실험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수강생들을 교육하는 입장이었지만 다양한 전공과 경험을 가진 분들과 업무적으로 교류할 수 있어 나에게 있어서 오히려 배움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된 값진 경험이었다.

  우리 연구실은 선후배간 교류도 활발하고 교수님,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이 함께하는 큰 행사도 매년 진행하는데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모임을 2년 가까이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이 하루 빨리 개선되어 교수님과 연구실 식구들이 다함께 모여 웃는 얼굴로 마주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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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박용철 교수님 및 연구실 식구들과

 

 

학위를 마치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는 전북 정읍의 농축산용미생물산업육성지원센터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 중에 있다. 이곳 정읍 미생물센터에서는 다양한 농축산용 미생물의 효능평가와 더불어, 100 L부터 10톤에 이르는 대형배양시설을 이용한 유용미생물의 대량배양 및 제형, 제품 제작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토양에서 분리한 유용미생물로 토양 잔류농약을 분해하는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이곳에서 학위전공과는 다소 상이한 과제와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어,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매번 다양한 실험들과 연구방법들을 익히며 차분히 연구자의 길을 걷고자 한다.

 

글을 마치며​  

 

 아직 해온 것보다 할 것과 배울 것이 더 많기에 내 이야기를 하는 것에 조심스러웠지만 이러한 경험을 계기로 나 자신을 돌아보고,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좋은 경험이 된 것 같다. 글을 기고할 수 있게 제안해 주신 서주현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또한 이 기회를 빌려 늘 나에게 도움과 가르침을 주신 지도교수님을 비롯한 많은 교수님들과 대학원 선후배님들, 농축산용 미생물센터의 실장님 및 연구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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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정읍 미생물센터 식구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