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은 지금 어디입니까
Date 2020-08-03 16:25:09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252
손만기
Postdoctoral Associate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Department of Chemical Engineering
mkson@mit.edu

지인으로부터 젊은 BT인에 기고를 요청받고, 어떤 주제로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그동안 연구자로서 삶을 돌아보며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박사학위를 받고 3년 정도 지난 한 사람의 삶으로 크게 특별할 것도 없지만 기억에 남았던 일들을 하나씩 풀어보려고 한다.


생물을 선택하다.
어려서부터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 덕에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나는 친구들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이였다. 부모님이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자연스레 친구들 집에서 저녁을 해결했으며, 종종 먹고 싶은 음식까지 친구 어머니에게 이야기하는 넉살좋은 아이였다. 학교에서도 공부를 하기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시험기간이 되어서야 마지못해 벼락치기 공부를 하는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으레 과학자라고 대답했다. 막연하게 과학자가 되기 위해 대학을 선택해야 하는 시기에 공과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었고, 고등학교 시절 가장 재미있게 공부했던 생물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조금 더 진지하게 진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던 것은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에 있었던 현장실습이 계기가 되었다. 화장품 회사와 대학원 연구실에서 각각 한 달간 실습하는 과정이었는데, 원료를 다르게 조합하면 화장품의 물성이 변하여 피부에 다르게 느껴지고, 그러한 화장품의 원료로 쓰기 위해 천연물에서 추출된 물질들을 대상으로 스크리닝을 하는 과정이 무척이나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듣는 것보다 연구실에서 직접 실험을 하는 것이 더 재미있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연구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석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원에 진학하다.
내가 석사과정을 시작한 인하대학교 김은기 교수님 연구실에서는 피부 미백제의 신규 원료를 스크리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기존의 세포 기반의 실험방법에서 벗어나 단백질칩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분석 방법을 개발하는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대장균에서 피부 미백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생산, 분리 및 정제하고, 그와 상보적으로 결합하는 DNA를 골드칩에 고정화하여 단백질과 DNA의 상호작용을 SPR (Surface Plasmon Resonance) 기술로 분석하였다. 컴퓨터 모델링을 통해서 1차 선별된 후보물질들의 결합 저해력을 개발한 분석 플랫폼을 통해 검증하였다. 이렇게 센서를 통해 2차 스크리닝에서 선별된 물질들은 산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화장품에 첨가하여 효과를 테스트 하였다. 석사과정 동안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진행되었던 프로젝트에서 실험실에서 시작된 아이디어가 실제 제품에 적용되기까지의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박사학위를 시작하다.
석사학위를 마친 후에는 서울대학교 박태현 교수님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연구실에서는 인간의 후각, 미각 등의 감각을 모사한 바이오전자센서를 연구하는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타겟 물질을 검지할 수 있는 수용체 단백질을 스크리닝하고 대장균이나 동물세포에서 생산하여, 나노센서에 결합할 수 있는 형태로 엔지니어링하는 일을 주로 하였다. 그렇게 제작된 인공 감각 시스템은 주로 탄소나노튜브 기반의 트랜지스터 센서에 결합하여 활용하였다. 학위를 하는 동안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홍승훈 교수님 연구실과의 공동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였다. 생명공학 기술과 나노기술의 융합을 필요로 하는 바이오전자 센서 개발을 위해 오랜 기간 두 연구실은 협업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협업을 통해 개발된 센서는 생물시스템이 가지는 높은 선택도와 나노소자 기반의 센서가 가지는 높은 민감도를 가질 수 있다. 병원, 기업 등 다양한 목적으로 바이오전자센서를 필요로 하는 팀들과도 공동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다. 개발된 센서는 인간의 호흡기에서 생성되는 휘발성 유기물질 분석을 통한 질병진단, 식품의 맛과 향 변화 분석을 통한 신선도 판별, 물속에 포함된 냄새물질 분석을 통한 환경오염도 측정 등에 활용되었다. 박사학위를 하면서는 연구실에서의 실험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다양한 공동연구 기회에서 오는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이 좋은 경험이 되었고, 훗날 다른 곳에서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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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서울대학교에서의 박사과정 사진

 

박사후연구원을 시작하다.
박사학위를 마친 후에는 MIT 화학공학과 Michael Strano 그룹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시작하였다. 연구실에서는 나노광학센서를 개발하여 다양한 방향으로 응용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는데, 나는 의학바이오팀에 소속되어 질병 모니터링 센서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었다. 단일벽 탄소나노튜브의 표면을 DNA 혹은 폴리머로 코팅하여 타겟 물질과 결합하는 프로브를 선별하여, 생체 내에서 신호 측정이 용이하도록 하이드로젤로 코팅하여 활용하였다. 개발된 센서는 동물에게 임플란트하여 약물전달에 따른 질병 부위에서의 형광신호 측정이 가능하였다. MIT가 위치한 보스톤에는 다국적 제약회사가 다수 위치하며, 활발히 연구를 진행하는 병원들도 가까이 있어 공동연구하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미국에서 연구를 하면서 느낀 것은 물론 좋은 논문을 쓰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무엇보다 개발된 기술이 실제로 환자에게 쓰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것이다. 프로젝트의 펀딩 규모가 크고, 도전적인 과제들이 많기 때문에 연구를 하는 중간 중간 많은 벽들을 만났지만 그만큼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도 더 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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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MIT에서의 박사후연구원 사진


마무리
생물을 전공으로 공부하면서의 시간을 글을 쓰면서 스스로 돌아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훌륭한 교수님들에게 배울 수 있었고, 좋은 연구실에서 좋은 동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항상 연구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변의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연구를 진행하며 잘 알지 못했던 부분에 있어서는 학문적으로 도움을 받았고, 열심히 일하는 동료들의 모습에서 자극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회포를 풀며 기분 전환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앞으로 내가 가는 연구자의 길에 있어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