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후반전
Date 2020-08-03 15:08:07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244
김수아
교수
전주대학교 환경생명과학과
skim366@jj.ac.kr

‘젊은 BT人’에 대한 기고를 쓸 기회를 주시고, 그동안 젊은 BT人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먼저 감사 인사를 드린다. 이번에 작성한 글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걷고 있는 모든 분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때 체육을 좋아해서 육상부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마지막 결승전에서 넘어지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산수경시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산수경시반 생활은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산수경시반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수학뿐 아니라 공부에 관해 관심을 두게 되었고, 좋은 동기, 선후배를 만났다.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열심히 학습하였으며, 서로 격려하며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었다. 그때 산수경시반이라는 동아리를 이끌어주시고 많은 가르침을 주신 정갑룡 선생님은 아직도 동기와 선후배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아침 정규 수업 전에 모여서 운동장을 돌며 체력단련을 시키셨고, 수업 후에는 따로 수학을 가르쳐 주셨으며,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셨다. 방학 때에는 63빌딩, 코카콜라, 내장산 등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힐 수 있도록 해주셨다. 선생님의 헌신과 사랑이 큰 밑거름이 된 것 같다.
만족스러운 수능 성적을 얻지 못해 재수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시기에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진로상담을 통해 대학교뿐 아니라 대학교 이후의 모습을 그려주셨다. 수학과 물리를 좋아해서 공과대학이나 이과대학을 갈까 했었지만, 나의 적성과 장단점을 파악하고 계신 담임선생님의 조언을 따라 고려대학교 생명환경과학대학에 진학하게 되었고, 2학년 때 식품과학부를 선택하였다.
학부 3학년 때 처음 김경헌 교수님의 식품생물물리 수업을 듣고, 교수님께서 하시는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교수님을 찾아가서 상담을 받으며, ‘교수님 연구실에 학부연구생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라고 말씀을 드렸을 때, 교수님께서 흔쾌히 나를 받아 주셨다. 그 이후로 나의 연구실 생활은 시작되었다. 여러 가지 연구의 기본 등에 대해 훈련을 받았고, 첫 연구 과제를 받고 성실하게 연구 과제를 마무리하여, 그 결과를 국제저널에 발표하기도 하였다. 주로 했던 연구 분야인 대사체학 (metabolomics)은 다양한 유전적 또는 환경적 등의 변화에 반응하는 생물 내에 있는 가능한 대사체군(metabolome)의 전반적인 변화를 분석하고 해석함으로써 그 변화와 원인을 규명하는 연구이다. 대사체군은 세포의 대사 경로 및 신호전달물질에 있는 저분량의 대사체 산물의 집단을 의미하는데, 대사체군의 변화는 세포의 생리적인 상태 및 대사 상태를 직접적으로 나타낸다. 실제로 표현형을 가장 잘 나타내기 때문에 대사체군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대사체학은 세포의 대사와 생리학적 현상 연구에 매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대사체학의 이러한 중요성으로 인해 2004년에 Metabolomics Society가 설립되었고, 2005년에 대사체학에 관한 연구를 게재할 수 있는 Metabolomics Journal이 SCI에 등록되었으며, MIT Technology Review가 선정하는 떠오르는 10대 유망 기술로써 선정되었으며, 2013년에는 한국대사체학회가 설립되었다. 대사체학은 동물, 식물, 미생물뿐 아니라 식품, 농업, 환경 및 독성 모니터링, 의약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적용이 가능하다. 석박사 과정 동안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한국연구재단, 환경부, 농림부, 보건복지부 등 많은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연구비를 수주받아 허브식물의 이차대사산물 추출 및 정제 방법 최적화, 허브 식물의 스트레스에 따른 메커니즘 규명, 효모의 대사공학 및 대사체학을 위한 효모 대사체 샘플링 방법 최적화, 에탄올 및 고온 내성 균주의 메커니즘 규명, 대사공학을 기반으로 한 균주개발, 발효 공정 기술 개발, 다양한 관절염의 바이오마커 발굴 등 식물, 미생물 및 인체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 결과들을 다수의 국제저널에 발표하였다. 다양하고 깊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많은 응원을 주신 김경헌 교수님과 연구실 선후배 동기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지도 교수님의 믿음과 배려를 통해 박사학위를 잘 마칠 수 있었으며, 좋은 대학으로 박사 후 연구원으로 갈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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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학위과정 지도 교수님과 함께

 

인체 시스템에 좀 더 관심이 생기면서, 졸업 이후 박사 후 연구원을 해외에서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수님과 박사 후 연구원 지원에 대해 논의하고, 교수님과 선배님들의 조언을 듣고, 나와 연구 분야가 비슷하고 관심 있는 그룹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학교와 교수님 성함, 이메일 주소, 연구 분야, 논문 발행 정도, 연구실 홈페이지, 박사 후 연구원에 대한 포스팅 유무, 지원 날짜, 답변 날짜 등을 포함하여 리스트를 만들었다. 일과 후 매일 밤 curriculum vitae와 cover letter를 수정하고 보완하여 한두 그룹씩 지원했다. 대부분의 답변은 아쉽지만 현재 펀드가 없다, 자리가 없다 등이었으며, 답변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어떻게 나의 이력을 보강해야 하나, 한국연구재단 국외연수 프로그램을 지원해볼까 생각할 때쯤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한 그룹에서 인터뷰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첫 인터뷰에 떨리는 마음으로 프레젠테이션과 인터뷰를 준비했다. 추운 겨울밤에 스카이프 인터뷰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렸으나, 따뜻한 봄이 되었지만, 오퍼 레터를 받을 수 없었다. 나 말고 다른 여러 후보자가 있다는 것과 온 사이트 면접 대상자를 우선으로 고려하고 있으니 기다리라는 답변뿐이었다. 좋은 경험을 했다 생각하고 다른 곳에 지원하며, 인터뷰를 보았다. 그러다 몇 주 후 존스홉킨스 그룹으로부터 오퍼 레터를 받고, 싸인 후에 박사 후 연구원을 나가기 위한 비자, 보험 등의 서류 준비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지원과정과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이 꽤 길었다. 해외로 박사 후 연구원을 준비할 때, 몇 달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면 좋을 것 같다.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은 미국 최고의 명문대로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의과대학이며,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 있다. 존스홉킨스로 박사 후 연구원으로 간다고 하니 많은 분이 좋은 학교로 가게 된 것을 축하해 주셨지만, 동네가 위험하다며 한편으로는 걱정을 해주셨다. 2015년 6월 처음 BWI 공항 (Baltimore/Washington International Thurgood Marshall Airport)에 내려 택시를 타고 미리 구한 아파트로 가게 되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평화롭고 한적한 곳을 지나 볼티모어시에 들어갔을 때, 나의 생각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도시 자체는 굉장히 위험해 보였고, 거리 곳곳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곳에서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가야 하나 걱정했지만, 특유의 긍정적인 마음과 생각으로 잘 적응해 나갔다. 적응을 할 수 있도록 지도 교수님뿐 아니라 많은 분이 도움을 주셨으며, 좋은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많은 분 덕분에 볼티모어를 제 2의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즐겁고 재미있게 미국 생활을 보냈다.
존스홉킨스대학교 피부과에서 Luis Garza 교수님 지도하에 미국 국방부 및 국립 보건원에서 연구비를 수주받아 피부 특성 전환 메카니즘 규명, 모발 재생산을 위한 신호 전달 기전 및 지질 대사 규명, 피부 손상으로 유도되는 셀 리프로그래밍, 피부 연구를 위한 세포 배양방법 최적화 등 피부 재생의학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Garza 교수님의 연구실 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과제 수행 중 어려운 부분이 있거나 개인적인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 찾아가 의논하고 조언을 구할 수 있었다. 또한, 매일 오후 4시 정도가 되면 각 연구원이나 학생들을 직접 찾아가 과제 진행 과정에 관해 묻기도 하고 방향을 잡아 주셨다. MD-PhD이신 교수님은 때론 환자를 보고 진료를 보는 것보다는 연구하고 생각하는 것이 더 즐겁다고 하실 정도로 연구에 대한 열정과 깊이가 있으셨다. 우리 연구실은 일주일에 한 번 lab meeting을 통하여 한 사람씩 수행하고 있는 연구주제나 다른 논문을 통한 동향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과에서는 매달 한 번 Combined lab meeting과 일 년에 한 번 Research retreat를 통해서 피부를 중심으로 임상과 기초 모든 부분에서 서로 수행하고 있는 연구주제에 대해 발표하고, 의견을 서로 나누고, 토론하는 등 활발한 연구 교류를 하였다. 과에서뿐 아니라 학교 내 모든 교수님이 열린 마음으로 전문 분야에 관한 주제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셨으며, 협력하여 연구하는 것에 대해 마다하지 않으셨다. 박사 후 연구원 동안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으며, 협력하여 연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우고, 연구의 폭이 더 넓어질 수 있었다.

박사 후 연구원으로 연구를 하면서 이후에 어떤 잡을 잡으면 좋을까? 어디서 잡을 잡아야 하나? 등 향후 목표에 대해 여러 고민을 하였다. 우연한 기회에 전주대학교의 공고를 보게 되었고, 이곳에 지원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인터뷰를 보러 온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먼저, 교수님께 절대적 양해를 구해야 하며, 나의 연구가 끊이지 않게 누군가가 도와주어야 했다. 서류가 통과하여 1차 면접을 보러 한국에 1주일 정도 갔다 와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을 때, 지도교수님은 너무 좋아하시면서 꼭 잘 보고 오라고, 이곳 연구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말고 인터뷰에 집중하라고 응원해 주셨다. 인터뷰 일정이 길어지면서 약 1달간을 자리를 비우고 돌아갔을 때도 밝게 웃으시며 네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 이시라며 잘 보고 왔냐고 물어보시면서 잘 되었을 때는 언제까지 정리해야 하는지, 잘 안 되었을 때, 앞으로 연구를 어떻게 진행해야 하며, 결과를 만들어서 grant에도 지원해보자고 격려 해주셨다. 전주대학교에 최종 합격을 했다고 말씀드렸을 때 누구보다도 기뻐하셨고, 과 내 모든 교수님에게 연락하여 합격의 소식을 전해 주셨으며, 축하받으며 홉킨스의 생활을 기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Garza 교수님은 홉킨스의 날개 없는 천사가 분명했으며, 나의 좋은 멘토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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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박사 후 연구원 지도 교수님과 함께

 

홉킨스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전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한 학기를 보냈다. 인생의 전반전에 만났던 모든 사람의 도움이 없었으면 새로운 후반전을 시작도 못 했을 것이다. 이제 김경헌 교수님과 Luis Garza 교수님처럼 멋진 연구실을 이끌어가야 할 차례가 되었다. 인생의 전반전에 연구했던 것을 바탕으로, 후반전에 저만의 색깔을 가진 연구를 수행해 보고자 한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좋은 멘토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후반전에 만나게 될 사람들을 기대해 보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